세상은 투쟁이다. 물론 대놓고 서로 싸우지는 않지만. 하지만 언제나 싸우고 있다. 실제 싸움도 있고 중상모략도 있고 시기질투도 있고. 여러 형태의 싸움이 있다.
그럼 그 싸움은 누구와 누가 싸우는 것인가? 그건 항상 가진자와 가지고 싶은자의 싸움이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아니라 가진 자와 가지고 싶어하는 자. 그 가진 것이 돈일 수도 힘일 수도 또는 능력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인간은 뭔가 남의 손에 든 사과가 더 커 보이는 모양이다.
이 중 가진자를 소위 보수라 부르고 가지고 싶은 자를 진보라 부른다. 다르게 표현하면 가진 자는 소위 기득권이 되고 가지기를 원하는 자는 민중이 된다. 당연히 기득권은 소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수를 형성한다. 왜냐하면 현재를 지키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사는 것이 형편없을지라도 그나마 요것이라도 지키고자 하는 생명 애착이 담긴 인간의 속성. 아마 본능일지도 모른다. 이런 인간의 속성이 기득권 주변에 서성이는 대중을 만들기 때문이다. 보수, 혹은 기득권은 언제나 이런 먹고사는 문제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게 이들의 힘이다. 10만원을 버는 사람은 그 10만원을 지키고자하고 100만원은 그 100만원을, 1000만원은 그 1000만원을, 그리고 1억은 또 그 1억을 지키고자 한다. 그걸 지키지 못하면 혹시라도 내 생존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득권 주변에 서성이는 대중인 보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진보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껴안고 물에 빠진 논개는 살고 싶지 않았을까? 이토오를 쏘아 죽인 안중근은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을까? 5.18때 총을 맞고 죽어간 무고한 시민들은 그렇게 죽고 싶었을까? 아닐 것이다. 모두에게 삶은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젊어서 죽은 해병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에 맞섰고 어떤 사람은 회장 대신 수십억을 받고 10여 년을 감방에서 살고 나왔다. 이런 삶이 같은 삶은 아니다. 모두의 삶은 다 각각 의미가 다르고 가치도 다르다. 물론 어떤 것이 더 좋다 혹은 고귀하다 혹은 글쎄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우선 살아야 하니까… 그런가…..
이렇게 사는 것, 생명 여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보수가 될 것이고 그보다는 내 생명보다 뭔가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진보가 될 것이다. 언젠가 유시민 작가가 말한 것처럼 보수는 사는 것에만 집중하고 진보는 사는 것 외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라고 한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보수는 삶에 목숨 걸고 진보는 삶이라는 실체가 아닌 이상이라는 허상에 목숨을 건다. 그리고 그 이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가 싸우면 보수가 유리하다. 왜? 보수는 목숨 걸고 싸우니까. 아니다. 진보도 목숨 걸고 싸운다.
보수가 유리한 이유는 바로 목적이 통일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수는 모두 살기 위해 싸운다. 지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싸운다. 지금도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라. 뻔히 보이는 헛소리를 하면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지면 죽으니까.
반대로 진보는 싸우는 이유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어떤 사람을 가족을 위해 싸우고 또 어떤 사람은 자유를 위해 싸운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이들이 뭉쳤을 때 사회는 진보하고 이들이 흩어지면 다시 보수가 등장해 사회를 한 발짝 뒤로 끌어 당긴다. 두 발 앞으로 한 발 뒤로. 이게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보가 등장하면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고, 좋은 의미로 이것을 발전이라고 부르자, 보수가 등장하면 변화를 제거한다. 이것을 안정이라고 부른다. 어떤 것이 더 나은가?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수가 등장하면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수많은 사건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걸 부패라 부른다. 왜? 보수의 특징은 잘먹고 잘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나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더 욕심을 부려 더 잘먹고 더 잘살려 애를 쓴다. 이렇게 애를 쓰는 과정은 당연히 깨끗하게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그래서 온갖 부정부패가 언제나 그들 삶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기득권의 특징이다. 더구나 한국의 기득권은 그 출발점이 친일파다. 온갖 비뚤어지고 왜곡된 개새끼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니 그들 삶에 똑바른 부분이 존재할 수 없다. 대중은 이런 것을 모른다. 아니 알 수도 있다. 하지만 알더라도 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고 보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불평등이 심화되면 반발이 생기고 그러면 보수 쪽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슬쩍 진보 쪽으로 넘어 온다. 그래서 잠시잠깐 진보가 힘을 갖게 된다. 이때 힘이 모이면 보수는 패배하고 진보가 힘을 갖게 되고 진보가 힘을 갖게 되면 개혁을 하게 되고 또 그 개혁에 반발이 생겨 보수쪽으로 몰려 간다. 이게 바로 도전과 응전의 역사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권은 무엇을 추구하나? 당연히 발전이라는 진보를 추구한다.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 같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