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별

A MUSICAL PLAY

김균형 작
곡 / 미정


등장인물

남편(별)
아내

아들
여인별
여인별의 남편
의사
돌아가는 별
할아버지별
지친별
밝게 빛나는 별들
어둡게 빛나는 별들
염라대왕과 지옥사자들

구성

1 남편
2 우리는 별
3 별들의 이야기
4 부인의 요구
5 남편의 선택
6 에필로그

무대

무대는 일단 하늘이 기본이다. 별들이 떠 있는 밤 하늘.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무대는 두 가지 다른 부분을 보여준다. 하나는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세상이며, 또 다른 하나는 죽은 사람들이 심판 받고, 벌을 받거나 보상 받는 지옥이다.

폰트칼라

푸른색 지문, 해설
주황색 노래
검은색 대사

#1 남편

아내(
목소리만) 여보세요? 왜 이제야 연락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자세히 얘기 좀 해봐요.

남편
미안, 미안. 짬을 낼 수가 없었어. 여태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보고하고, 끝나고도 새로 결성된 팀 직원들이랑 가볍게 한잔하고 이제야 여유가 생겼어.

아내
그러니까 당신 프로젝트가 선택되었고 당신이 그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본부장이 되었다는 거죠?

남편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아내
정말 잘 됐네요. 축하해요. 이제 우리 큰집으로 이사하고 차도 바꿀 거죠? 설마 약속 잊은 건 아니죠?

남편
물론이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아내
정말이죠? 고마워요. 내일부터 당장 집 찾으러 다녀야지. 어느 동네가 좋아요?

남편
난 상관 없으니까 아무 곳이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해.

아내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데… 당신이 본부장이 되면 당신 앞으로 더 바빠지는 거 아니에요? 여태껏 당신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 몇 년을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아예 당신은 돈 버는 기계가 돼서 집에서 얼굴조차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남편
아니 기분 좋은 날 왜 그래? 잘 알잖아.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죽어라 일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래?

아내
알죠. 알기야 하죠. 하지만 당신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오더라도 우리한테는 돈도 필요하지만 당신도 필요해요.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애들하고 얘기라도 할 보통 아빠가 필요하다구요.

남편
알았어. 알았어. 내가 앞으로 신경 쓸게.

아내
어쨌든 당신이 잘돼서 분명 축하는 해야겠는데요, 분명히 알아두세요. 우리에겐 당신이 더 필요하다는 걸. 그리고 특히 애들에게는 당신이 꼭 필요해요. 걔들 요새 사춘기인 건 알고나 있어요? 나 혼자 힘들어요. 돈도 좋고 승진도 좋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아빠가 꼭 필요할 때인지도 몰라요.

남편
알았다니까. 내가 나 혼자 잘되자고 이러는 거 아닌 걸 당신도 잘 알잖아. 난 가족 밖에 없어.

아내
몰라요. 하여간 빨리 들어오세요.

남편
알았어. 애들이나 바꿔줘

아내
잠깐만요. (아들에게) 아빠야.

아들
(역시 목소리만) 아빠?

남편
어, 아들. 뭐해?

아들
저녁 먹고 잠깐 티비보고 있어. 그런데 뭐가 잘 됐어?

남편
응, 아빠가 직장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나 제안했거든. 그런데 그게 채택돼서 아빠가 본부장으로 승진 한 거야

아들
야, 아빠 잘됐네. 아빠 그럼 이제 우리 부자 되는 거야?

남편
부자? 그래. 그렇지. 부자가 되는 거지.

아들
아빠, 나 그럼 살 거 많은데.

남편
뭘 사고 싶은데? 우리 아들이 원하는 거라면 아빠가 뭐든지 다 사 줘야지.

아들
있잖아….

동생
(역시 목소리만) 오빠. 오빠. 나도 바꿔줘~

아들
야, 내가 먼저 얘기하고.


오빠는 많으니까 나중에 얘기하면 되잖아. 이리 줘. (전화기를 빼앗아서) 아빠. 축하해. 그리고 아빠, 아빠 승진 기념으로 우리 이번 주에 나가서 밥 먹자. 나 옷도 하나 사주고.

아들
(대화에 끼어들어) 아빠. 나는 폰 바꿔줘. 그리고 노트북도 하나 사주고.

남편
그래 아빠가 약속할게. 우리 딸 아들. 그 동안 아빠가 일 때문에 바빠서 너희들에게 신경도 제대로 못썼는데 아빠가 이번만큼은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모두 다 해줄게.

아들
예이! 우리 아빠 최고!


알았어. 아빠, 엄마가 얼른 들어오래.

남편
그래. 지금 아빠 술이라도 깰 겸 걸어가는 중이거든. 곧 도착한다고 엄마에게 말씀 드려.


응. 빨리 와~

남편
(달려 나가며) 자 집으로!

2 우리는 별

남편
여기가 어디죠? 그리고 당신들은? 자동차가 달려오는 걸 본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죽었나요? 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나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안돼. 안돼! 난 가족에게 가야 해. 모두 날 기다리고 있어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이건 말도 안돼. 난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해. (주변을 돌아보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안돼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어요. 이건 말도 안돼요. 오늘을 기다리며 여태까지 내가 어떤 고생을 했는데… 안돼요. 이럴 수는 없어요.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요.

3 별들의 이야기

의사
저희도 여러 각도에서 충분히 검토를 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전이가 너무 심각한 상태라 수술조차 의미가 없겠습니다.

남편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여인별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요? 수술 불가능 한가요?

의사
제 판단으로는 수술은 더 위험한 선택입니다. 죄송합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병원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퇴장)

여인별
울어? (남편 흐느끼는 소리 점점 제어가 되지 않고 커진다.) 자기 우는 거 처음 봐. 자기 나 죽으면 지금처럼 서럽게 울어 줘야 돼. 새 장가 갈 생각에 덩실덩실 춤추지 말고.

남편
여보. 우리 다른 병원 가자. 더 유명한 의사한테 가보자.

여인별
자기야.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좋은 병원이고. 저 박사님이 최고로 유명한 권위자라잖아.

남편
그래도. 그래도. 내가 알아 볼게. 유럽이든 미국이든 어디든. 가보자. 살 수 있어. 너 살 수 있다고!

여인별
자기 그거 기억나? 우리 연애 할 때 산에 캠핑 갔던 거?

여인별
별 참 예쁘다. 자기 저 별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저 별들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래.

남편
누가 그래?

여인별
그냥 어디선가 들은 얘기야. 그나저나 우리 결혼하기 전에 오는 마지막 여행이겠다. 그치? 자기 결혼하면 나한테 잘해야 돼. 항상 집에 일찍 들어오고 항상 밥은 같이 먹고. 나는 혼자 밥 먹는 거 정말 싫어해. 알았지?

남편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여인별 나 자기 닮은 예쁜 딸 하나 낳고 싶어. 그런데 내가 애를 낳을 때까지 잘 살 수 있을까?

여인별
나는 왜 이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아이라도 하나 낳아 당신에게 안겨주고 떠나고 싶었는데. 미안해.

남편별
그래요. 나는 정말 억울합니다. 나는 정말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내 할일만 최선을 다하며 살았어요. 그 덕분에 본부장도 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이게 뭔가요? 그동안 내가 미루어 두었던 모든 일들, 본부장이 된 다음에 하려고 미루어 놓았던 모든 일들, 이 모든 것들이 다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래요. 나는 정말 억울해요.

남편별
어려서부터 나는 언제나 매사에 최선을 다 했어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자고, 한번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완수하고. 나는 실수도 하지 않았고 정말 언제나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어요. 직장에 취직해서도 마찬가지였죠. 처음에는 일이 즐거웠기 때문이고 결혼한 이후에는 내 가족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열어주어야겠다는 일념이었죠. 어떻게든 빨리 자리잡고 승진해서 좀 더 큰집도 사고 큰 차도 타고 애들도 좋은 학원 보내고 가끔 해외여행도 가고. 이게 내가 가진 유일한 생각이었어요. 모두 이런 생각하지 않나요? 특히 회사에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후, 회사에서 몇 년 정도 추진하고 결정하자고 한 이후에는 정말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어요. 어떻게든 이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만일 이게 잘못되면 내 인생도 내 가족도 모두 끝이다 생각이 드니 한 순간도 일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내 개인 인생은 없어졌죠. 그냥 프로젝트에 미친 한 인간만이 있었을 뿐이죠. 정말 여러 해 동안 내 능력을 입증하고 내 프로젝트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어요. 덕분에 가족에게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죠. 아니 애들 얼굴 보기조차 어려웠어요. 하지만 아무도 윈망하지 않았어요.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물론 집사람도 또 아이들도 모두 이해했어요. 어차피 지금 이 순간 내가 조금 더 고생하면 곧 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가족들과 제대로 외출도 못하고 밥도 못먹고 또 편안히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다 참을 수 있었어요. 어차피 인생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예상한 대로 내 프로젝트는 훌륭했어요. 현재까지의 매출을 두 배 이상 혁신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익의 일부를 스톡옵션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이제부터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죠. 당연하잖아요. 이제 나는 본부장이니까. 이제 부자도 될 수 있으니까. 그래요. 나는 됐어요. 모든 걸 가질 수 있게 됐어요. 모두가 부러워할 대상이 될 수 있었어요. 그래요 나는 성공했어요. 나는 성공했다고요.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이 중요한 순간에, 아니 이제 뭔가 이루어지고 이제부터 나의 행복한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에. 나뿐 아니라 나의 가족 모두가 기다리던 이 순간에.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내가 죽어야 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이건 말도 안돼요. 이럴 수는 없어요. 아마 나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동안 내가 투자한 그 모든 시간 열정 그리고 보장된 미래. 그 때문에 내가 소홀 할 수밖에 없었던 내 가족.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며 모든 것을 이해해 주던 내 가족. 도대체 신은 왜 이 순간에 나를 데려왔을까요? 이것이 내 운명이라고 내게 주어진 내 인생이라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가슴 아파요. 이럴 수는 없어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왜 신은 이 순간에, 다른 순간도 아닌 하필 이 순간에, 나를 죽게 만들었을까요? 내가 나쁜 인간이라면, 내가 죄라도 짓고 남들에게 피해라도 주었다면, 그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면, 그래요, 인정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았어요. 최선을 다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별들의 슬픈 이야기는 노래를 통해 더 강해진다.

별1
돌아가고 싶어요. 세상에 남기고 온 사람들에게.

별2
우리를 돌아가게 해주세요.

별3
우리를 불쌍히 여기세요. 우리에게 희망을 주세요.

별4
지금이라도 우리를 되돌아가게 하소서

별5
신이시여. 신이시여. 우리에게 생명주는 신이시여.

지친별
(앞으로 나서며) 바보 같은 소리! 멍청한 소리! (남편별에게) 희망? 가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절망만 더 커질 테니까. (별들에게) 당신들은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래. 봤지. 우리 모두 돌아가는 별을 보았지. 하지만 그렇게 어쩌다 하나씩 돌아가서는 우리가 다 돌아가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해. 난 수십 년을 비추었어. 그 어떤 별보다 빛나려 애썼어. 그렇지만 돌아갈 수 없었지. 난 더 이상 믿지 않아. 더 밝아지면 돌아갈 수 있다는 걸. 그냥 우리는 이렇게 가슴만 조리며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만 가지며 저들에게서 잊혀질 때까지 여기에서 빛이 나야 하는 거야.

4 부인의 요구

남편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파하 …(아내에게 다가가 열심히 말을 하지만 삶과 죽음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

아내
생각할수록 화가 나요. 당신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나요? 그래요. 당신이 당신 혼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일했다는 것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의도가 아무리 좋았더라도 당신은 거짓말쟁이일 뿐이에요. 설사 지금 이 상황이 당신이 의도했던 것이 아닐지라도, 당신은 우리와 약속조차 지킬 수 없어요. 이게 결과에요. 게다가 당신은 아이들이 커가는 그 중요한 순간에 밥이라도 같이 먹고 같이 얘기하고 여행하는 정말 자연스럽고 단순한 일도 함께 하지 못했어요. 우리에게 뭔가 뚜렷한 기억조차 남겨놓지 못했어요. 행복한 기억이라도 많이 남겼다면 이런 저런 추억 속에 과거라도 더듬으며 슬프지만 때때로 행복해질 수도 있겠죠. 그리고 당신은… 어느 날 갑자기 죽었죠. 이게 가족이에요? 우리가 가족이었어요? 그래요. 당신이 한 일이 하나 있기는 하죠. 당신이 그렇게 가족 내팽개치고 회사 프로젝트에 매달린 덕에 회사에서 우리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신경을 써 주겠다 네요. 당신 프로젝트가 아주 좋았나 보죠? 역시 당신은 능력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요. 고마워요. 아주 고맙네요. 죽으면서까지 이렇게 큰 행복을 남겨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그렇게 당신이 능력이 있으면 뭐해요. 이제 나와 아이들만 살아야 하는데. 우린 어떻게 해요? 갑자기. 우리 아이들 어떻게 해요? 나 혼자 어떻게 키워요? 어떻게? 당신 정말 미워요.

할아버지별
너무 그렇게 괴로워하지 말게나. 시간이 지나면 차츰 해결될 테니까

남편별
아닙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남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정말 이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만하며 살았습니다. 열심히 살면서 이제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할아버지별
누구나 다 그렇게 아쉬워하지.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그립고 자신이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이 아쉽지. 그렇지만 조금만 참게나. 그러면 괜찮아질 테니까. 조금만 참아 보도록 하게나.

남편별
뭐 방법이 없을까요? 다만 잠깐만이라도 저들과 이야기할 수 없을까요?

할아버지별
글쎄 그게 과연 좋은 생각일까? 무슨 얘기를 할텐가?

남편별
무슨 얘기요? 무슨 이야기든지요.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이제 준비는 다 됐다. 아빠가 열심히 해서 잘 살 준비가 다 됐다. 곧 돌아갈 테니까 기다려라. 그리고 우리는 아니 너희는….

할아버지별
너희는?

남편별
너희는. ….

할아버지별
그래. 삶과 죽음은 함께 할 수 없으니까. 삶에 더 이상 자네의 자리는 없으니까.

남편별
아니에요. 분명 뭔가 할 얘기가 있을 거에요.

할아버지별
우리 모두 돌아갔었지. 그렇지만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네. 삶과 죽음은 함께 하지 못하니까. 죽을 날을 알면서 산다는 걸 생각해 본 적 있나?

남편별
그래도

할아버지별
그럼, 그렇게 원한다면 갔다 올 수도 있네. 물론 일시적이지만.

남편별
정말요? 어떻게요? 어떻게 갔다 올 수 있어요?

할아버지별
자 몇 가지 조건이 있어. 우선 자네가 죽기 전 30일 이내로만 돌아갈 수 있네. 그러니까 잘 생각해서 돌아갈 날을 정하고, 가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얘기를 잘 준비해야겠지. 물론 죽은 날 다시 죽게 될 것이고.

남편별
제가 언제 죽는다고 말해도 되나요?

할아버지별
물론.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자네가 죽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오히려 자네만 이상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테니까. 그리고 반드시 기억할 것은 무엇을 하더라도 반드시 죽은 날 죽게 되니까 죽음을 피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네.

남편별
좋아요. 어떻게 되든 좋아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할 수 있으면 되니까.

할아버지별
그리고 세 번째 규칙도 있는데, 만일 두 번째로 돌아가려 한다면….

남편별
상관 없어요. 왜냐하면 두 번째는 없을 테니까. 저는 돌아와서 밝아질 거에요. 그리고 곧 돌아갈 테니까.

남편
(달려가 아내를 안으며) 여보.

아내
(깜짝 놀라) 아니, 왜 이래요?

남편
미안해. 미안해.

아내
아니. 뭐가 미안해요?

남편
내가 죽지 않았으면 당신에게 그런 마음 고생시키지 않을텐데.

아내
뭐라구요?

남편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내
아니 당신 왜 이래요? 당신이 죽다니? 그게 무슨 얘기에요.

남편
나 며칠 후에 죽어. 하지만 곧 다시 열심히 빛을 내서 살아 돌아올 거야. 그래서 당신에게 이 얘기하러 잠시 돌아온 거야.

아내
….

남편
정말이야. 내가 죽더라도 회사에서 경제적인 것은 책임져 줄거야.

아내
그래 말은 고마운데…. 혹시 프로젝트가 잘못됐어요?

남편
여보 정말이야. 날 믿어줘. 나 사실 죽어서 별이 됐다가 잠깐 돌아온 거라니까. 당신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어서.

아내
저기 여보…

남편
내 말이 안 믿기겠지만 믿어야 해.

아내
저기 여보. 알았어요. 당신 말 믿을 게요. 그런데 프로젝트는 잘 돼가요? 설사 잘 되지 않더라도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돼요.

남편
당신 지금 내 말 안 믿는 거지? 믿어야 한다니까.

아내
그래요. 그런데 정말 아프지 않아요? 혹시 열이라도…

남편
아니야. 믿기 어렵겠지만 날 믿어야 해. 내 말을 믿어야 해.

아내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일단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좀 쉬는 게 어때요?

남편
그래. 출근하지 않을 거야. 내가 죽는 날까지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날 믿지? 날 믿어야 해.

아내
저기 여보….

남편
그리고 애들은?

아내
애들이요? 애들은 아직 자요. 토요일이라 늦게 까지 자도록 하잖아요.

남편
애들 좀 깨워줘. 얼른.

아내
저기 여보…

남편
애들에게도 얘기를 해야 해. 걔들도 알고 있어야 해.

아내
저기 여보…. (슬슬 두렵다.)

남편
빨리 애들 좀 깨워줘.

아내
아니 깨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남편
빨리 깨워 달라니까. 애들에게 꼭 얘기해야 해.

아내
저기 여보. 애들이 지금 자고 있어서….

남편
내가 미친 것 같지. 그렇지만 난 미치지 않았어. 난 단지 죽어서 별이 됐다가 돌아왔을 뿐이라니까. 그리고 곧 다시 완전히 돌아올 거야. 난 아무렇지도 않다고.

아내
글쎄 그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남편
얼른 아이들 깨워줘.

아내
알았어요. 알았어요. 깨울게요. 여기에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남편
말해야 해. 내가 모두를 사랑한다는 걸, 내가 얼마나 가족을 아끼고 있는지를 꼭 알려야 해. 내가 죽더라도 그건 억울한 것이고 나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었다는 걸. 그리고 내가 곧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기다리라고, 말해야 해. 말해야 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두에게 얘기해야 해.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해

아내
저기 여보….

남편
(모두를 끌어 안고) 혹시… 혹시… 곧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꼭 알아야 한다. 아빠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꼭 알아 둬라. 아빠는 너희를 정말 사랑해.

아들/딸
아빠, 아빠 왜 이래? 아빠 어디 가? 왜 울어?

아내
여보. 무슨 일이에요. 아니, 왜 그래요? 도대체.

남편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아빠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고 싶을 뿐이야. 알았지? 아빠는 너희를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아들/딸
(울며) 아빠, 가지 마. 아빠.

남편
아니야. 아니야. 아빠는 아무 데도 안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

아들/딸
아빠. 아빠.가지마 아빠.

아내
얘들아, 아빠 아무 데도 안가. 얼른 들어가. 엄마도 금방 들어갈게.

남편
혹시 말이야, 혹시라도 아빠가 없더라도, 아빠가 없어지더라도, 아빠는 너희를 사랑해. 아빠는 우리가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을 다했어. 잊지 말아라. 아빠를. 아빠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꼭 기억해둬.

아들/딸
아빠. 아빠. 가지마. 아빠.

아내

이이가 정말. (아이들에게) 얘들아, 얼른 들어가 있어. 엄마 금방 들어갈게.

아내
아니. 무슨 일이에요. 당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이 잘못됐죠. 프로젝트가 잘못됐죠. 그래서 죽기라도 하려는 거에요? 그래요? 그깟 일로 죽겠다 구요?

남편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내
아니면? 아니면 뭔데요? 도대체 어딜 간다는 거에요? 도대체 오늘 아침에 왜 이래요? 속 시원하게 말을 해봐요.

남편
아니, 혹시라도 내가 교통사고로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내
그만, 그만. 그런 끔찍한 얘긴 듣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죽고 싶어요? 그깟 프로젝트 때문에? 그래서 당신한테 나가래요?\

남편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아내
아니면 뭔데요. 도대체 오늘 아침에 왜 이러는데요.

남편
그러니까 며칠 후에 내가 죽더라도….

아내
여보. 제발. 제발. 그런 얘기 그만해요. 너무 끔찍한 얘기잖아요. 그래 당신이 죽으면 우린 어떻게 하라구요? 생각을 해봐요. 나 혼자 남아서 쟤들 어떻게 키워요? 돈은 어떻게 하구? 일이 잘못돼서 당신이 옷 벗어야 한다면 나와서 다른 일을 찾아야죠. 당신 능력 있잖아요. 직장 옮겨서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잖아요. 그깟 일 하나 잘못 됐다고 죽을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냐구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제발.

남편
그런게 아니라니까….

아내
당신 여자라도 생겼어요? 그래서 나가 살림이라도 차리려고 해요?

남편
그게 아니라 내가 죽는다니까.

아내
여보. 제발. 제발. 가족을 생각해요. 아니 애들을 생각해봐요. 쟤들을 생각하면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하면 안돼요. 제발 여보 부탁해요. 여보.

남편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들어가. 들어가. 나 갔다 올게.

아내
여보…

할아버지별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나? 가봤자 후회만 더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남편
신은 심술쟁이가 분명해요.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게 분명해요. 그는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리고 너무도 중요한 순간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빼앗아가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난에 가슴 아파하고 되돌릴 수 없는 삶에 좌절하는지 과연 그는 알까요? 죽은 사람들이 무얼 느끼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무얼 생각하는지 신은 알까요? 신은 매일 죽은 이들의 아픔을 듣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전혀 바뀌지 않았죠. 인간을 만든 이후 오늘까지 수 많은 사람을 만들고 중요한 순간에 목숨을 거두어 오고 그리고 그로 인해 슬퍼하는 가족들과 하늘에 떠서 빛나야 하는 죽은 사람의 슬픔에 박수치며 즐거워하죠. 신은 정신병자에요. 신은 미쳤어요. 나는 신을 미워할 거에요.

5 남편의 선택

아내
견딜 수 없어요. 정말 견딜 수 없어요. 오늘 당신 친구들이 왔어요. 그렇게 당신과 친하게 지내던 당신 친구들이. 그리고 당신 직장 동료들도 왔어요. 모두 당신이 좋은 친구였다고, 당신의 프로젝트가 정말 훌륭했다고 아쉬워했어요. 그리고 당신의 좋은 기억들이 그립다고 했어요. 정말? 그럼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 가족에게 무슨 기억을 남겼죠? 단지 몇몇 기억? 충분치 않아요! 기억은, 행복했던 기억은, 우리에게 슬픔을 극복하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에요. 그 기억들은 행복했던 그 순간들을 다시 살려주니까.

아내
그래요. 당신은 없으니까, 알 수 없겠죠. 내가 뭘 어떻게 느끼는지. 당신 사진을 보는데 당신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거에요. 이 사람이 내 남편이었나?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지? 이유가 어떻게 됐든 나는 나대로 아이들과 치이며 살아왔고 당신은 당신대로 승진하려고 애썼으니까, 그 동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행복이라는 삶은 없었던 거죠. 그래요. 우린 함께 하지 못했어요. 갑자기 울고 싶어지는 거에요. 그런데 울음이 잘 안 나와요.

아내
그런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요.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미안해요. 아마 당신에 관한 기억이 내 머리 속에서 너무 조각 나 있기 때문이겠죠. 그것들이 나를 괴롭혀요. 운전하다 보면 밥을 먹으려다 보면 침대에 누우면 출근 준비 하다 보면… 뭔가 떠오를듯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으면서…

남편
나는 내 아내 그리고 내 아들 딸을 사랑한다. 그리고 매일 밤 그들이 보고 싶어 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 하늘에서 밝게 빛나고 모든 것들을 비추려 애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들에게 슬픔을 주고 눈물을 준다. 내가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그 많지 않은 기억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슬픔을 주고 눈물을 준다. 나는 원해 나를 기억하기를 나는 원해 매일 밤 내 가족을 볼 수 있기를 그러나, 그들에게 나를 기억하는 것은 슬픔이고 나를 기억하는 것은 눈물일 뿐

남편
(감정이 점점 더 격해져 간다.)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신이시여 왜 나만? 내 모든 친구들 동료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어요. 나만 빼고. 왜 나만? 난 당신을 원망해요. 나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아빠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존재했던 흔적들이 그들을 슬프게 하고 있어요. 단지 내가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더라면!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행복한 기억을 남길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 기억으로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당신은 내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어요. 내 삶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취급할 수 있나요? 내 삶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준 것이에요. 당신은 당신 소유물에 대해서조차 사랑이 없나요? (울며 소리치며) 당신은 나를 돌려 보낼 건가요? 내가 충실하게 비추고 밝아진다면 나를 저들에게 돌려 보낼 건가요? 그러나 믿을 수 없어요. 당신에겐 사랑이 없으니까. 저들과 내가 사랑으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당신은 알지 못하니까. 저 아래 내 아내가 고통 받고 있어요. 기억나지 않는 나를 기억하려 애쓰고 있어요. 함께 하지 못했던 많은 시간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어요. 얼마 되지 않는 내 가족들과의 삶이 내 아내를 고통 받게 해요. 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난 지워주고 싶어요. 내 얼마 되지 않는 흔적들. 차라리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나와 했던 기억이 아예 없었더라면.

할아버지별
(다가가서) 시간이 해결해 줄 걸세. 시간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지. 그리고 매일 밤 밝아지려 애쓰다 보면 언젠가는 돌아갈 수도 있고, 만일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겠지.

남편별
아니요. 안되겠어요.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당장 가서 제가 살았던 흔적이라도 지워야겠어요. 차도 팔아 치우고 침대도 그리고 책상, 집 그리고 …

할아버지별
그렇게 하면 해결되겠나?

남편별
해결되겠죠. 나의 흔적이 없어지니까. 그리고 흔적이 없어지면 슬픔도 사라지겠죠.

할아버지별
글쎄. 그럼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기억들?

남편별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하지만 돌아가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죠

할아버지별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일이 아니래도. 모든 것은 시간만이 해결해. 참아야만 하네.

남편별
하지만 나 때문에 내 가족들이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있어요. 나 때문에, 바로 나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가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요.

할아버지별
글쎄. 좋은 방법이 아닐세. 돌아갈 수는 있는데, 우선 돌아가더라도 이미 경험한 것처럼 자네만 괜히 미친 사람 소릴 듣게 될 거야.

남편별
하지만 진심을 다해 말하면 믿어주지 않을까요?

할아버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는 결국 죽어야하고 그건 가족에게 이중의 슬픔을 남기는게 아닐까? 그리고 누구도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은 얘기하지 않아도 잘 알테교.

남편별
하지만 잘 얘기해서 준비하도록 한다면?

할아버별
그렇게 돌아가고 싶나?

남편별
저는 돌아가야 합니다

할아버지별
마지막 더 큰 문제가 있네. 자네가 듣기를 거부했던 세 번째 규칙이지. 그건 자네의 영원한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는 거네. 세상에 돌아가면 더 이상 다시 별이 돼서 돌아올 수 없게 돼. 즉 윤회로부터 빠지게 되고, 별똥별로 폭발해 사라질거야· 자네의 존재는 영원히 없어진다는 것이지.

남편별

예? 아니 무슨 그런 ….

할아버지별
그러니까 천천히 기다리라는 거야. 물론 자네의 현재 삶도 중요하지 더구나 그렇게 모든게 준비된 순간에 죽게 됐으니까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나. 나도 이해하네. 하지만 자네에게는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또 다른 삶이 있네. 그걸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여인별
시간이 해결할 거에요. 저도 처음에는 견딜 수 없었어요. 너무나 슬펐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차츰 무뎌지면 충분히 견딜 수 있어요. 이것도 하나의 습관이니까요.

할아버지별
그러게 말이야. 차라리 이 순간을 다음 생을 준비하는 하나의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남편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시간이 해결하겠죠. 하지만, 그러기에는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왜냐하면 내가 너무 부족하게 느껴지거든요.

할아버지별
그런 생각할 필요는 없지. 이미 모든 것은 다 끝났으니까. 그냥 현재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여인별
그래요. 다시 간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열심히 빛을 내면서 다음 생을 기대하세요. 그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니까.

남편별
맞아요. 그래요. 하지만….

남편별
그래요. 그냥 포기하면 되겠죠. 이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포기하면 되겠죠. 그런데, 그냥, 나는 부끄러운 아빠로 부족한 남편으로 남고 싶지 않아요. 그건 내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죠. 바로 신이 내게 준. 그는 내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성격을 주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했구요. 그리고, 그리고 만일, 나의 다음 생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러면 나는 또 포기하고 그 다음 생을 위해 부족한 존재로 남아야 하나요? 또 다음 생에서도? 이것이 내 운명인가요? 나는 포기해야 하는 운명인가요?

할아버지별
차분히 노력하고 애쓰고 밝아지다 보면 돌아갈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가?

남편별
극단적인 생각?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부끄러운 존재로 남고 싶지 않고 또 더구나 포기하는 존재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만일 내게 주어진 운명이 포기하는 존재라면 차라리 내 존재를 포기하겠습니다.

할아버지별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닐세. 사람에게는 각각 운명이 있는 것이고 그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책임이겠지.

남편별
하지만 그 책임이 너무 부조리하면 거부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할아버지별
너무 지나쳐. 너무 극단적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는 결국 자네를 파괴하고 말 걸세. 우리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고 그건 바뀌지 않는 본질이야.

남편별
본질? 그것이 인간의 본질? 그래요.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본질이죠.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 한다. 신의 뜻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할아버지별
그렇지. 신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칠해지지 않은 깨끗한 삶을 주었어.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삶을 채우는 일이지.

남편별
그렇죠. 맞아요. 신은 우리에게 깨끗한 삶을 주었어요. 그래요. 깨끗한 삶. 그리고 그것을 채우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할 일이죠. 맞아요. 채우는 것은 신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에요. 나에게 달린 문제죠. 내가 원하는 색으로 칠할 수 있는 거죠. 그가 원하는 시간에 태어나고 죽지만, 살아있는 동안 칠하는 것은 바로 나죠.

할아버지별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남편별
찾은 것 같아요.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요.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을.

남편별
그래. 나는 내게 주어진 내 운명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으니까. 유일한 방법은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 나를 바꾸는 것. 나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생을 만들 것이다. 쉽고 단순한 일. 집에 일찍 돌아오고, 가족들과 많이 얘기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나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그들을 위해 쓸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이 나를 행복을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면 내가 죽었을 때 그들이 나를 기억하는 것이 슬픔일지라도 행복한 기억이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그 기억들로 인해 그들은 치유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의 기억 속에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6 에필로그

부인
우리 다 같이 여행 온 것도 참 오랜 만이다.

남편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앞으로는 당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뭐든 할게.

부인
정말? 그러면 당신 회사는? 당신 프로젝트는? 잘 돼 가고 있어?

남편
걱정하지 마. 내가 일주일 후에 본부장이 될 테니까. 확실해. 믿어도 돼.

부인
좋은 소식이네. 결정된 거야?

남편
아직, 하지만 확실해.

부인
정말 좋은 소식이다. 얘들아, 아빠가 승진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도 가고 차도 바꾸자.

남편
당연한 얘기지. 당신이 언제부터 집과 차를 얘기했는데. 그게 일 순위야. 당신 원하는 대로 해.

아들
아빠 나는 새 폰 필요한데.

남편
이 아빠가 잘 알지. 내일 바꾸어 줄게. 어때?

아들
정말? 좋아.


그럼 나는?

남편
아빠가 예쁜 온 사줄까? 그리고 내일 아예 쇼핑을 나가자. 그래서 식사도 같이 하고 말이야.


바로 그거야 아빠.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남편
이 아빠가 잘 알지. 이 아빠는 언제나 너희들 곁에 있을 거야. 하지만, 만일, 그럴리는 없지만, 만일 어느 날 이 아빠가 너희와 함께 할 수 없더라도 이 아빠가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는지 알아 주기를 바래. 이 아빠는 언제나 너희들 곁에 있을 거야. 만일 다른 삶을 살게 되더라도, 너희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거야. 우리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면 개라도 될 거야.

아이들
우리도 그래 아빠!

부인
당신의 가족 사랑이 그렇게 컸나? 좋아. 나도 맹세하지.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컸었는지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남편
이제 우리 별이나 셀까?

부인
야, 정말 별들이 많다. 그리고 별들이 되게 밝아.

아들
맞아. 나도 이렇게 많은 별들 그리고 이렇게 밝은 별들을 전에 본적이 없어.

남편
혹시 아니? 별들이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


정말? 아빠는 어떻게 알아?

남편
어떻게 아냐 하면 (잠시 사이) 그러니까 그냥 알지. 그리고 별들이 밝은 이유도 사실은 별들이 밝아지면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래.


아빠 말을 듣고 보니까 별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것 같아.

아들
너도 그렇게 느끼니? 나도 그런데.

부인
엄마도 그렇다. 오늘밤 우리는 마치 별들과 얘기하고 있는 것 같구나.남편

맞아.
별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거야. 나도 그렇게 느끼거든. 별들이 죽은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 말자. 모두 잘 자라. 내일 우리는 또 새로운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어 보자.

모두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