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로서는 은퇴를

제가 처음 가이드를 시작한 것은 아마 1989년 1월일 겁니다. 파리에서죠.

어떻게 하다가 가이드를 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요. 특별히 누군가 추천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여행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하여간 어떻게 가이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말에 프랑스에 도착을 해서 우선은 Toulouse 라는 도시에 몇 달 살았습니다. 그리고 파리로 이동을 했죠.

우선 파리로 가기 전에 학교를 알아보다가 파리 제3대학 Sorbonne Nouvelle에 연극연구원이 있는 것을알았고 거기에 편지를 썼습니다. 프랑스는 일단 교수가 학생을 받는다고 해야 등록이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불어가 별로라서 친구를 시켜 대리 통화를 하고 하여간 그 이후에 파리에 올라가 교수님을 만났죠.

교수님은 George Banu 라는 분이셨고 연극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참 대단한 분이셨고 지난 번 코로나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쨌든제가 쓴 연구계획서를 보시고 당신은 나하고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고 하셔서 결국 그 분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되었죠.

그러는 와중에 가이드도 시작하게 된 것이구요.

지금도 수업 듣는 것이 생각납니다. 기분이 좋으면 한 80%는 들려요. 그런데 안 들리는 날은 20%밖에 안들립니다. 게다가 수업이 진행되면 같이 끼어들 수가 없잖아요. 특히 프랑스는 수업을 토론을 많이 합니다. 세 시간 수업이며 절반은 강의하고 절반은 토론합니다. 그런데 토론이 될 수가 없죠.

그래서 남들이 웃으면 같이 웃으면서 알아들은척했던 기억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다 중간고사를 보았는데,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하여간 뭘 써 내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써 낸 것을 가지고 교수와 1:1로 토론을 하는 것이었죠. 일단 뭔가를 써 내고 나중에 교수님을 만났는데, 첫 마디가 누가 썼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썼다. 그랬더니 니가 말하는 것보다는 쓰는데 더 낫구나 하고 어쨌든 토론을 하고 27점을 받았습니다. 30점 만점에. 제가 최고 점수였어요. 그게 그 분께 아주 잘 보인 결정적인 한 방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이후에는 그 분이 저에 대한 일종의 완전한 믿음을 주었고 박사학위 받는 순간까지 저를 후원하셨죠.

원래 루마니아 사람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유학와서 파리 3대학 교수가 된 분이죠.

그 사모님도 같은 3대학 교수였어요. 지금은? 현재도 파리 3대학 명예 교수로 계십니다.

사실 저의 연극의 바탕은 이 분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Banu 교수는 원래 평론을 중심에 두던 교수인데 부인의 영향으로 연극 인류학으로 넘어간거죠. 그러니까 연극 인류학을 새롭게 만든 사람은 바로 이 Monique Borie라는 부인입니다. 그리고 그걸 남편이 확대시켰고 저도 그것을 계승했죠.

그래서 제 연극은 일상적인 사실주의 연극과는 좀 다릅니다.

어쨌든 가만 보니 괜히 내 얘기를 시작했네. 썼으니까 지우기는 그렇고 하여간 시간이 되는 대로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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