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희망이 사라지면 절망이 남나? 아니겠지.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은 불확실성이 보이면 회의의 상태가 오며 거기에 불안이 동반되며 비관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비관이 확정적이 되는 순간 좌절하게 되고 좌절을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 절망이 된다. 어제 이재명의 무슨 글인가로 나는 절망한다.

하긴 이미 오래 전부터 절망했고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어제 롤렸다는 글의 내용이 절망에 확실한 도장을 찍어 주었다. 한국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래서 나도 매일 촛불이라도 들어야 하나?

이재명이 뭐라고 했는가? 잊었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내 맘대로 할테니까 떠들지 말라 이런 얘기다. 게다가 무슨 갖잖은 유튜버 아이들을 동원해 협박을 시전하고 있다. 찾아낸다는니 왜 개기냐느니? 이런한심한 놈들을 보았나? 지금이 무슨 독재시대냐? 이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놈들이 저런 헛소리를 떠들고…

답답하다. 대통령 하나 잘 못 뽑아 대한민국은 이대로 망가지나?

물론 이재명이 일을 잘 할 수도 있다. 지금 상태로 보면 그럴 것 같지 않지만.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나라가 제대로 된 상태로 갈 것이냐? 아니다. 설사 그가 정말 일을 잘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배부르고 등따시게 되더라도 그가 희망하는 구조적 다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왜? 한국인들은 배부르고 등따스운 것 보다 내 생각이 실현되는 것을 더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근본적으로 진보 성향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가 그렇지는 않다. 진보는 언제나 소수다. 하지만 보수가 가만히 있을 때 아무 것도 진전된 것이 없고 진보가 움직일 때 그 반대급부로 사회가 진전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소위 중도가 움직였다. 중도를 움직이는 것은 배부르고 등따스운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시대를 보자. 단 하루라도 우리가 포기했던 적이 있나?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일본에 거부했다. 왜? 그냥 포기하고 시키는 대로 살면 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라가 나한테 뭔가를 해준 적도 없었다. 게다가 솔직하게 아주 개판의 나라였다. 하지만 내 부모가 개판이라고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을 부모로 모시는 것보다 함께 부딛고 싸우며 더 나은 부모를 만들겠다는 욕심처럼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지키고 차라리 내 부모를 돌리기 위해 애썼다. 물론 이 시대에 이미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냥 일본놈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냥 대충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부했다. 수많은 사건들이 온 동네 방방곡곡에서 벌어졌다. 다 일본을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이게 한국인이다. 대가리가 망가지면 그냥 순응하지 않고 그 대가리가 바뀔 때까지, 그래서 결국 대가리를 바꾸는 것이 한국인이다.

이제 절망을 맞은 한국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마지막은 결국 대가리를 바꾸자는 행동이겠지.